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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4

10월 22일 얼음(10월 - 애착 / 2015 하루달력) 10월 22일 얼음 얼음은 공격 도구이자 장난감이었다. 맥도날드에 모여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서 입을 떼기 시작한다. 콜라가 나오면 슬슬 눈치를 본다. 한 명이 ‘아그작’ 소리를 내는 순간 서로의 얼굴에 얼음을 맞추며 하나씩 투투 뱉어댔다. “하지마라캤다.” 경고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분명 사회 조별과제 모임이었지만 얼음을 뱉다가 갑자기 “금마 지금 뭐 하고 있겠노. 전화해볼까.”라는 생각도 투투 뱉어냈다. 생각이 정제 없이 입까지 그대로 달려오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발표용 전지에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을 낙서하고 끄적거렸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가 뭔가 막히면 다시 얼음을 서로에게 날렸다. 얼음 하나 튕기고 시계를 보면 한 시간씩 가 있을 만큼 웃기에 바빴다. 그 새 나이를 무럭무럭 먹은 우리는 .. 2015. 11. 1.
2월 25일 최초의 기억(2월 - 그리움 / 2015 하루달력 ) 최초의 기억김근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뿌연 상들만이 어슴푸레 남아있다. 기억을 헤집고 들어가 찾은 첫 번째 기억은 펑펑 내리는 눈이다. 이제 막 뛰놀기 시작한 어린 애기였을 때 집 앞에 함박눈이 사뿐 내렸다. 하늘을 향해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내려오는 눈들을 반갑게 맞았다. 천천히 내려오던 눈과 내 눈이 마주친 순간과 맨 손으로 뛰놀다 뒤늦게 장갑을 꼈을 때 느껴졌던 그 온기를 잊을 수 없다. 스무 해를 부산에서 자라며 눈을 본 것은 4번뿐이다. 눈 내리는 서울을 무심히 바라본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무엇에건 탄성이 터져 나오는 마음은 어린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큰 행복 아니었을까. [출처] 2월25일. 최초의 기억 - 김근혜|작성자 시청역의점심시간 2015. 11. 1.
1월 15일 협약 체결일(1월 - 행복 / 2015 하루달력 ) 1월15일 협약체결일김근혜 ‘1시부터 공부해야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 ‘이왕 3분 넘어간 거 15분부터 해야지’ 라고 마음 먹는다. 신년 목표도 1월 1일부터 잘 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친 마냥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작심삼일이 되려는 찰라 1월 15일이 되면 다시금 마음을 다 잡아 본다.아버지와 나는 신년의 마음가짐이 약해지는 1월 15일 즈음 흑룡조약을 체결했다. 금주와 다이어트라는 각자의 목표를 세워 흑룡조약을 만들고, 서로 한 약속을 어길 시에 아버지는 엄마에게 꽃다발을 드리고, 나는 108배를 해야 했다. 올해도 조약을 맺어야 하는 걸 보면 늘 흐지부지다. 그래도 15일, 다시 마음먹기에 참 좋은 날이다. [출처] 1월15일. 협약체결일 - 김근혜|작성자 시청역의점심시간 2015. 11. 1.
4월 8일 말문의 닻 (4월 - 성격 / 2015 하루달력 ) 4월8일말문의 닻김근혜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때쯤 동네에서 나는 ‘잘 사라지는, 사진관집 작은 딸내미’로 소문이 났다. 놀러 가는 언니를 뒤따라 나가다가 없어지거나, 해운대 인파 한가운데서 사라지는 것은 약과였다. 명절 친척집 투어를 마친 뒤 들어가라며 집 앞 대문에서 등을 떠밀었는데도 사라질 때가 있었다. 코 앞에서 사라진 것에 어이없어 하며 온 가족이 아찔해 할 때쯤 동네 비디오 집에서 딸내미 데려가라며 전화가 왔다. 천연덕스럽게 입구 옆 소파에 턱 하니 앉아 외삼촌이 보여 따라갔다고 조잘조잘댔다.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있을 외삼촌을 말이다.작은 딸내미는 타고난 오지랖도 자랑했다. 손님이 명함사진 찍으러 사진관에 오면 방 안에서 자다가도 벌떡 뛰어나왔다. 엄마가 큰 카메라 속으로 고개를 쑥 넣고 사.. 2015.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