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내 옆에서는 늘 개구쟁이에 짜증 섞인 말투와 강한 장난을 치는 언니지만 선생님으로서 언니의 모습은 천지 차이일터. 선생님으로서 언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나는 서울에, 언니는 부산에 사는 탓에 우리는 서로 함께 붙어 지낼 시간이 많지 없다.
언니의 학교는 우리 집에서 1시간 반. 늘 언니가 9시가 되기도 전에 쓰러져 자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1001번 버스를 타고 끝없이 달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시장을 거쳐 대신중학교를 향하는 길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산의 다른 모습을 가진 동네였다..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붐비는 것에 익숙한 내게 중 고등학생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중고등학생이 많았나 ? 더군다나 중학생들이 너무 애기같이 보이고 가끔씩 보이는 고등학생들은 그에 비하면 어른이었다.
여러 종류의 교복이 내려오지만 저 교복만은 아니기를 바란 교복이 있었다. 하늘색 도는 상의에 민트색 바지라니. 정말 누가 디자인한 것인지 불쌍하다 싶었다. 그러나 대신중에 가까워질수록 민트 교복은 엄청난 지분율을 자랑했고 불길한 예감은 정통으로 들이받았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운동장에 있는데 야구부가 한창 연습이었다. 야구부 때문에 언니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운동장에서 야구부 애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 지 '탕탕' 공을 쳐냈다. 야구부가 있어 큰 운동장을 가진 중학교의 모습에서 언니가 등하교를 하고 수업을 하는 일상이 그려졌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교실로 올라가 구경을 했다.
마치 토익 볼 때 고사장처럼 정말 너무나 옛 모습의 나무 교실이었다. 언니 교실의 특징은 전진배치였다. 아이들 자리를 교탁 코앞까지 불러세웠다. 엄마와 나는 뭐 이렇게 불러 세웠냐고 하니 아이들의 집중을 위해서 어떻게든 앞으로 당기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교실 뒤에는 아주 널찍한 운동장이 생겼다.
교실 뒤 게시판을 보니 언니가 한 땀 한 땀 만든 학급 조직도와 아이들의 사진이 있었다. 정말 중학생 소년들의 교실이었다. 교탁 앞에서 언니가 소리를 치고 칠판위에 언니가 쓴 조례사항들을 보니 정말 언니가 선생님 같았다. 교실을 향해 올라갈 떄 아이들이 언니에게 투정부리듯 아 쌤 뭐에요 라고 할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온전한 언니의 일터이고 공간이었다.
학교라는 공간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다. 그래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그 아늑함과 조금은 권태로움이 느껴진 일터였다.
딱딱하지만은 않고 풋풋함을 늘 머금은 꽤나 좋은 일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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