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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씨앗/매일을 기록

왜 노후만 설계 ?

by 그네* 201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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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과제로 썼던 글이다. 

읽을 때마다 생각의 꼬리가 재밌는 글.

사회학적 상상력. 참 좋은 생각의 씨앗.


▷ 왜 노후만 ‘설계’?


지하철 역 광고에 ‘인생 설계’라며 30대부터 70대까지의 인생을 그려놓은 것이 있다. 인생 설계의 주된 요약은 연령별 재테크 노하우나 ‘어떻게 노후를 대비하여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냐’이다. 인생에 많은 결정과 준비의 순간이 존재함에도 노후 설계라는 말이 보편화되었다. 왜 직업 설계, 결혼 설계, 자녀 계획 설계보다는 노후에만 유독 ‘설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비슷한 의미인 ‘계획’과 비교해 볼 때, 설계가 주는 첫 번째 의미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임에도 스스로 계획하기보다는 자산 전문가, 설계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처럼 미디어는 늘 말한다. 노후 설계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고찰하는 모습의 노년이 연상되지 않는다. 어떤 친절한 전문가가 옆에서 서류를 보여주면서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것이 노후 설계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이미지다. 자신의 인생임에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영역이 되어가는 것이 ‘설계’라는 말의 힘에 깔려있다.


이러한 ‘설계’라는 언어와 함께 떠오른 전문가의 등장은 또 다른 수익 구조의 발생이다. 실버산업이라 불리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 기회의 포착이다. 자신의 노후를 설계해줄 ‘설계 전문가’가 필요하고 이들은 각 고객에게 맞춤화된 설계 플랜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이 맞춤화의 과정의 중요한 잣대는 ‘예상 수익과 지출’, 즉 경제력이다. 돈이 있으면 더 멋지게, 원하는 것을 더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건물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노후 설계는 자금의 여유와 같은 의미로 치환된다.


노후 ‘설계’라는 표현을 통해 노후의 영역은 좀 더 사유화된 공간으로 들어온다. 연금 설계, 은퇴 설계로 세분화되어 가면서 노후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능력의 몫이 된다. 노후 설계도 없이 은퇴를 맞이한 자는 그만큼 사회에서 자기 미래도 책임지지 못 할 만큼 여유 없이 살아온 사람이 된다. 혹은 자식 농사에서도 실패하고 부랴부랴 치킨 집을 열어 빚만 안게 되는 중장년층의 공포를 떠안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노년층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복지나 사회 안정망은 턱없이 취약하다. 사실 ‘중산층’이라 스스로 여겨도 될만큼, 자산 전문인에게 관리를 맡길만큼 여유로운 이도 그리 많지 않다.


노후에 대한 복지보다는 경제적 ‘성장’을 우선시 하는 사회였기에 노후의 영역도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 있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더 성장할 수 있는 분야에 모든 사회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식이었다. 때문에 노후를 잘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회의 성장논리를 거스르지 않고 잘 따라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사회의 성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도록 ‘복지’의 영역도 여전히 시장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사회가 고령화 저출산을 겪으며 인구가 주는 것은 곧 시장 규모가 줄어듦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장과 타겟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늘어나는 고령화 인구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신세계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굳이 정부가 나서서 세금을 통해 시장 기회를 박탈하겠는가’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파편화하고 구매력 있는 소비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 활동이 나를 증명하고 인생의 계획조차 시장 기회가 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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