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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독서모임 발제 후기

by 그네*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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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5.18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면에서 각오하고 읽었지만, 읽고나니 마음이 너무 힘들다. 

읽는 내내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동호와 동호 가족, 도청에 있었던 누나, 형들의 여러 관점에서 이어지는 묘사들이 너무도 생생했다. 

무장한 군인들을 상대로 총을 제대로 쥐어본 적도 없던 시민들이 맞서야 했을 때의 그 막막함.

생존자들에게 이어지는 상흔의 기억들과 회한들이 너무 가슴 아프게 파고들었다. 

 

우리 모두는 광주에 빚졌다. 

경상도인으로서 부끄러운 몇몇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전라도 출신에게 덧씌우는 이상한 프레임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이 이상한거지 그게 전라도랑 무슨 상관이냐.'하며 말하면 딱히 답을 못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광주 사람들이 홀로 고립된 순간에도 5.18로 민주주의를 지켜냈기에 지금이 있다.

민주주의 정신의 수도는 광주다. 

그런데 어떻게 5.18을 여전히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짓고 본질을 흐리며 아직도 북괴 타령하는지...?

아니 북한 없으면 우리나라 보수는 정치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이런 후진 정치에서 벗어나야한다. 

 

역사는 피해자 중심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어제 내란수괴 윤씨가 석방되었다. 가해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주기 위해서 여태 없던 법제 해석까지 새롭게 해냈다.

이게 피해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검찰도, 사법부도 똑같다.

이것만 봐도 이 나라는 답이 없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도 모자랄 판에 더 최악의, 최악의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리트머스 종이로 감별하듯, 부역자를 가려낼 시간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계엄의 무게를 잘 몰랐던 듯하다. 

이 책을 읽으니 계엄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말살시키는가?

지금의 일상이 얼마나 아득하게 멀어지는지. 

너무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내란수괴에 대하여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원문으로 읽는 즐거움

소년이 온다의 영문 제목은 Human acts, 인간의 행위 라고 한다. 

넋이 온다는 그 표현이 영어로는 도저히 번역이 어려워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할만한 표현을 찾아보자 하여

성경을 들고 집으로 오는 길이던 신혼부부를 군인들이 잔인하게 공격하던 대목에서 착안하여

인간이 어디까지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담으며

인간의 행위라는 제목이 되었다. 

 

https://youtube.com/shorts/qEgRZiY_XRM?si=fE6rg0eLBpuiYiNg

 

이 소설은 거의 체험형 소설이다.

80년 광주도청으로 가서 동호라는 소년을 만나고 독자와 연결되면서

그 소년이 지금의 우리에게 온다는 개념이 잘 이해가 된다. 

그 넋이 온다는 느낌이 너무 좋은데 이게 번역이 되지 않아 아쉽다. 

한국인의 한이라는 정서는 역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듯하다.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한국인이라 뭔가 기쁘다. 

 

생각해보면 좋을 질문 

1. 소년이 온다는 아래 두 질문에서 시작된 글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 과거가 현재를 도울수 있는가?

 -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2. 인간의 양심, 존엄성을 지키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3. 인간은 왜 이토록 인간에게 잔인할까?

 

4. 내가 정의하는 인간이란?

 

5. 내가 기억하는 국가의 폭력

 

6. 2025년 현재의 계엄에 대한 나의 의견

 

인상 깊은 구절

P. 13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P. 89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불렀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P.91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들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트럭이 병원 앞길을 지나가며 목소리가 크고 선명해졌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멀어진 지 십분이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런 소리를 그녀는 처음 들었다. 수천사람의 단호한, 박자를 맞춘 군홧발 소리. 보도가 갈라지고 벽이 무너질 것 같은 장갑차 소리. 그녀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어느 침대에선가 어린 환자가 애원했다. 엄마, 창문 닫어줘. 닫았어. 더 꽉 닫어. 꽉 닫았다니까. 마침내 그 소리들이 지나가자 다시 가두방송이 들렸다. 도심의 침묵을 가로질러, 여러 블록 너머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소리였다. 여러분, 지금 나와주십시오.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P.95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9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P. 113 처음부터 상황실장은 우리 목표가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만. 수십만의 시민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때까지만. 

 

P. 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력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

기억하는 건 다음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것 같은 순가의 광휘를. 

 

P.119 우,우리는.... 주,죽을 가,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시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120 눈을 문지르지 않는 그 아이의 왼 주먹, 꽉 움켜쥔 그 손가락들 사이에 약솜이 끼워져 있는 것을 나는 묵묵히 바라봤습니다. 

 

P. 123

나는 앞쪽을 살폈습니다. 누군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린 영재라는 걸 깨달았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돼 있었습니다. 

 

P.135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213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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