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랑 친구하고 싶어요
언니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술술 읽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정말 담백하고 깊이 있게 담겨있다.
마음에 남는 표현이 너무 많았다.
어떤 글은 너무 솔직해서 읽는 이에게 그 자체로 남아버린다.
그리고 또 살아나갈 힘과 방향이 되기도 한다.
올해 내게는 장일호의 슬픔의 방문이 그런 책이었다.
아버지는 저자가 '술, 담배 중에 무엇을 끊겠냐'는 질문에 목숨을 끊겠다고 한 대목이 너무 인상깊다고 하셨다.
이생에 미련 없이 언제 생을 떠도 후회 없다는 식으로 사는 저자가 정말 멋졌다.
멋있는 척 하지 않고 솔직하고 담백한데서 나오는 멋이었다.
엄마는 제주도에 있다는 그녀를 한 번 찾아가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삶의 여러 위기 속에서도 이겨내고 잘 살아내고 있는 그녀를 만나보고 싶고 너무 매력적이라 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좁은 관점에 갇혀 있었는지.
그리고 더 솔직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담백한 문체 속에 깊이있게 담겨있는 메시지들이 정말로 좋았다.
저자가 상처를 마주하고, 또 나도 누구나 마주했던 삶의 여러 대목에서 정말 당차고 멋지게 살아왔다.
좀 더 일찍 읽었다면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나 또한 차용하지 않았을까?
그럼 내 삶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 있을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
P.20
나는 김애란의 단편 <영원한 화자>의 문장을 인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썼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P.49
그런 우리에게도 '고3' 시절이 있었다. 80%에 가까운 또래들이 수능 준비에 열을 올리는 동안, 20%에 속한 우리는 반을 합치고 밥을 합쳤다. (중략) "몇 학번이세요?"를 인사로 묻는 사회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 수능 전날, 우리는 우리가 보지도 않을 수능시험을 대비해 책상 대열을 새로 맞췄다. "내일은 학교 안 와도 된다"라는 선생의 말에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P.54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 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는 '운'이 되어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만한 어른의 존재다."너무 빨리 어른인 척 해야 했던 스무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
P.62
나는 때때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죽음은 공평하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연인 죽음은 늙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온 것의 결과로 평가 받아야한다. 그런 생각이 든 날은 좀 더 씩씩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P.74
"누나. 나는 잘해 보려고 했던 일인데 매번 이런 식이야."
나는 그 말에 아직도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세상은 모르는 그 애의 최선을 나는 안다. 다만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비정규 노동의 틈새를 전전해 온 30대 중반의 남성은 '작은 성공'조차 쉽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할 때 대단히 많은 벽에 부딪친다."는 점은 가난이 가진 질긴 속성이다.온라인 도박 사이트는 드물게 장벽이 없는 공간이었다. 가끔이긴 하지만 성취감을 줬다. 청소년기에는 게임이 그 역할을 했었다. 나는 내 동생의 노동을 딛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동생 삶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글만 바쁘게 쓰고 있다는 자괴가 몰려왔다. 세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91
'생존자'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몇번이고 발음하며 입 안에서 굴려봤다.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니 감격스러웠다. 내가 경험한 폭력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어느 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가 당한 일은 내 잘못이 아니며, 나는 이 고통을 '자원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지, 어디에 서서 고통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따라 고통은 다르게 해석된다."
p.96
침묵 깨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생존자들은 다른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용기를 보면서 동기부여가 된다.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책을 쓰고, 가해자(혹은 기관)를 고소할 때 그녀는 다른 생존자들에게 침묵을 깨라고 자극하는 중이다. 많은 여성들이 다른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치유를 결심하게 된다.
P. 110
나도 한 때는 사람 돌보는 거나 동물 돌보는 거나 같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언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공부 잘 하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꼭 그런게 아니라도 보통의 시민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렇기에 때론 다그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현재 지향적이다.
P.113
그림 속 고양이는 인간의 슬픔을 신경쓰지 않는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되, 스스로 극복 할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는다. 고양이의 어떤 무심함이 사람을 살린다는 걸 나는 안다.
P.118
결혼은 당연한 걸까. '이혼해서는 안 된다' 따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을 서약해야하는 자리에서 나는 가족식 혼배미사를 도와준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아주 대단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해 보고 아니면 그만둘 수도 있는 인생의 '과정'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되도록 실패하지 않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 관계의 결말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가 내 인생을 흔들도록 두지는 않을 거라고. 그래서 신부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P.142
백은선 시인은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이야말로 '나쁜 것'이라고 적는다. 그는 의심을 '면밀히 살펴보고 검증하는 절차'로 규정한다.
P.165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김소연, 너를 이루는 말들 부분
서글픔과 피곤함이 '기어이' 다정과 평화를 닮아가는 일은 타인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통과하는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 모르겠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P.216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성인이 되면 으레 부모가 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길인 양 살아가던 세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피임약 덕분에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됐고, 자녀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일부 부모들은 자녀를 낳은 일을 후회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저자는 조언한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준비가 안된 사람' 혹은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없는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거라고.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여기는 대신 지금처럼 아이가 없는 상태로 살게 되기까지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 사회에는 아이를 낳지 않으면 자녀 양육에 따르는 귀중한 경험의 '기회를 놓친다'는 경고 메시지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경험을 선택하고, 놓친 경험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P. 247
제주는 지천에 무덤이 있다. 밭 한가운데, 길가에, 집 옆에. 삶의 자리마다 죽음을 끌어안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적어도 제주에서 죽음은 추상이 아니었다. 버젓이 물리적 형태를 갖고 일상에 있었다. 죽음을 삶에서 격리시키지 않았다. 허은실 시인이 쓴 <내일 쓰는 일기>에는 제주 사람들이 무덤을 묘라 부르지 않고 '산'이라 표현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묘 주변에 사각형이나 원형 돌담을 쌓아 울타리를 만드는데, '산담'이라 부른다. 방목한 소나 말이 무덤을 훼손하건, 봄철 목초지를 태우는 '방애불'이 무덤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내 마음을 끄는 산담의 역할은 따로 있다.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묘를 집처럼 여겨 울타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밤에 길을 잃었을 때 산담 안에 들어가 잠을 자면 묘주인이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으로 여겨 보살펴주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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