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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프로젝트/시청역의점심

1호 점심 - 시청역 점심 먹이는 사람

by 그네* 201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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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점심 먹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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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사람이 있으면 밥을 먹이는 사람도 있는 법. 시청역의 끼니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점심은 어떨까? 점심마다 인파가 쏟아지는 <다담정식>에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박종철 사장은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들을 맞이하고 보내느라 분주하고 아주머니들은 주방에서 바삐 음식을 준비하고 내놓는다.


박종철 사장의 하루는 집을 나서는 아침7시에 시작된다. 11시까지는 주방에서 식재료와 반찬을 준비한다. “점심은 오전 11시나 오후 3시에 간단히 해결합니다. 13년 동안 해 온 점심이라 익숙하죠.” 점심을 챙겨주느라 정작 자신의 점심은 잃어버려 슬플 거라는 예상은 오만이었다. 내 리듬에 맞는 점심시간이 사회 통념이 정해둔 시간과 다르다고 해서 슬플 이유는 전혀 없었다.

밥집 사장이 바라본 손님들의 점심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시청역 점심시간은 주변 회사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져요. 사실 한 회사가 꾸준히 오래 살아남기 힘들거든요. 회사가 바뀌면 당연히 찾아 오는 사람들도 바뀌어요. 한꺼번에 새로 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지기도 하죠. 또 요새 사람들은 회사를 많이 옮겨 다니니까 꾸준히 오다가 못 오기도 합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손님들과 대화할 여유는 없지만, 제 아내는 늘 밥 먹는 젊은 사람들이 참 고생이 많다고 해요. 일하다가 뛰어나와서 밥 한 끼 먹을 때도 줄 서야 하고 말이죠. 끼니 거르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고요.”


<다담정식> 메뉴는 백반 하나다. 자리에 앉으면 주문할 것도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공기밥에 찌개, 나물, 계란말이, 김치, 생선과 제육볶음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비워진 그릇은 다시 새 반찬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시청역 사람들에게 점심밥을 해 먹이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돈까스집으로 시작했는데 실패했어요. 사람이 제일 많아서 시청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뭘 몰랐던 거죠. 이리 저리 물으러 다니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 임시 공휴일이던 그 다음 날부터 백반을 시작했어요. 아무리 알아보고 돌아 다녀봐도 한국 사람은 결국 ‘밥’이더라고요. 고기, 생선, 파란나물, 찌개가 밥이랑 함께 있는 점심이요. 아침도 거르고 바삐 나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백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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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이 지나고 그에게도 행복한 점심이 찾아왔다. “돈까스 가게가 실패하고 백반으로 바꾼 뒤 수익이 나기 시작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저도 시청 사람들처럼 회사에서 10년 정도 일을 했는데, 몸을 다쳐서 식당 일을 하게 됐어요. 집까지 담보로 해서 가게를 임대했는데 돈까스 집은 무너지고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백반을 하면서 수익이 조금씩 나니까 ‘집도 되찾고 우리 아이들도 학교 보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가게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가게를 1.5배 넓혔는데 사람도 딱 그 정도로 늘어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3배도 더 되는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서 욕심 부리지는 않아요. 지금도 제 목표는 손님들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아무 부담 없이 오는 거에요. 다른 곳도 들러 맛보고 하다가 또 생각나면 편하게 와서 드시고 가면 좋은데, 다행히 그 목표에는 닿아있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바쁘게 밥 해 먹이는데 지친 부부의 주말 점심은 어떨까. “주 5일이 되었잖아요. 토요일에는 시청역이 한산해서 저희도 쉬어요. 참 좋아요. 아내가 식당에서 밥, 찌개, 반찬을 손수 다 짓고 만들거든요. 평일 동안 내내 주방에 있는 아내를 위해서 주말에는 제가 밥도 하고 설거지도 돕곤 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제가 게을러져서 외식을 많이 해요. 한정식 공부도 할 겸 여러 가게에 가서 다양한 메뉴를 맛봅니다.”


이야기 나누는 내내 자신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아내를 치켜세우기에는 바쁜 그의 모습에서 고운 마음이 묻어났다. “아내가 우리 가게 모든 일을 해요. 전 그저 계산하는 경리일 뿐이죠. 아내는 항상 공부해요. 집에도 가게에도 온통 요리책이에요. 같은 반찬 같지만 아내는 늘 조금씩 다르게 하려고 시도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발 길 끊지 않고 계속 찾아와 주시는 것 같아요.” 시청역의 점심이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그는 살포시 가슴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미소와 자신 있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 삶이죠. 사람들이 점심 먹으러 여기 찾아와 주는 덕분에 애들이 학교도 다닐 수 있고, 저는 제 집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 삶 그 자체입니다.”



http://www.citylunch.co.kr/gobongbap/class_articles/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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