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아이딘리로 출발!
벌룬투어를 끝내고 밴 타고 숙소로 왔다.
쉴틈 없이 10시부터 시작되는 투어! 루비호텔 체크아웃하고 도보 1분컷인 아이딘리로 출발했다.
체크인 시간 전이라 아이딘리에 짐을 맡기고 투어를 나섰다.
정말 다들 너무 친절해서 기분좋게 체크아웃하고 곧바로 체크인!
도착한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 언니랑 형부랑 연서는 옆 카페에 있기로 했다.
아무래도 7살 연서가 같이 다니기엔 ㅠㅠ 너무 무리인 일정이라 언니네는 카페에서 쉬었다.
지하도시 데린쿠유란?
가이드 스앵님에 따르면 카파도키아에는130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다고 추정된다.
무딘 돌의 특성 때문에 인간의 손과 도구로 만든 도시라고 한다.
발견된 지하도시 중 최대 규모인 데린쿠유 지하도시의 최대 깊이는 아직도 발굴 중이라 하고,
현재는 안전상의 문제로 일부만 공개 중이라고 한다.
한 농부가 자꾸 집의 닭들이 사라지길래 닭들을 쫓아갔다가 발견된 지하도시라고 한다.
집 마당 뒤에 이런 지하도시 입구가 있었다니 영화같은 전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최초의 터널들은 4천 년 전에 파였다고 추정하는 설도 있으나, 튀르키예 문화부의 발표에 따르면 기원전 8~7세기 프리기아인들이 착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성기는 동로마 제국 시대로,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이 무슬림 아랍인, 튀르크족의 습격을 받자 피신처로 이용했다. 14세기 티무르가 공격할 때는 정교회 원주민들의 피신처로 이용되었다. 심지어 20세기까지도 카파도키아의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피해 피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이후 1923년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주민 교환으로 버려졌다가 1963년 재발견되었다.
참으로 여러 종교 전쟁을 거치며 오만 종교와 인종의 사람들을 보듬어준 도시인듯하다.
성인은 구부려서 다녀야 하는 좁고 낮은 복도
엄마랑 기린이랑 아부지랑 나만 우선 들어갔다.
데린쿠유는 한 여름인데도 내부는 추웠다. 생각보다 훨씬 좁았따.
엄마는 계속 "독립운동 자폭을 하지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데린쿠유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라며 갑갑해했다.
좁은 길은 억소리가 났고 그 와중에 이 지하에...! 가축을 키우는 공간, 학교, 예배당이 있어 놀라웠다. 인간의 생존력이란.
가...가축? 이 지하에서? 환기는 어쩌고?
근데 지하도시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금 환기가 중요하냐?'라고 말하는 듯 했다.
정말 빛 한 줌 없이 어둡고 허리를 펼 수 있는 곳이 몇 없다.
엄마와 아버지는 들어가는 길에 '와이구랴' 곡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아버지는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곳에 안전모 하나 없이 사람들을 들여보낼 수 있냐'며
우리보다 더 한 튀르키예의 안전불감증에 좀 놀라신듯 했다.
한 명이 나와야 한 명이 걸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씨익 웃으면서 서로 가는 길을 양보했다.
가이드쌤이 엉뚱한 곳으로 가면 길 잃어버린다며 딱 붙어서 안내해주셨다.
여기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뜨케요...? 가이드 스앵님께 딱 붙어서 다녔다.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았을 지하도시 사람들
전쟁을 대비한 도구나 장치가 곳곳에 있었다.
적들이 들어오면 문을 빠르게 닫고 이동을 막게하기 위해서
곳곳에 큰 바위문들이 있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해 하수구처럼 망을 씌워놨지만 원래는 덫으로 사용했다.
덫에 걸려 적들이 빠지면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서 적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안그래도 지하에 숨어서 지내는데 전쟁을 대비해서 살아야했던 사람들이 불쌍했다.
사진 명소 스팟은 바로...
사람들이 많이 사진 찎는 곳이라며 가이드님이 귀한 단체 사진을 찍어주셨다.
가족 다같이 사진을 찍으며 신났는데 돌아서 나와 공간 설명을 해주시는데 깜짝 놀랐따.
나무 기둥 양옆에 패인 곳이 있는데 바로 죄수의 팔을 양옆으로 묶어 두는 곳이라 한다...!
죄수 형벌 장소였던 것!
이 작고 좁고 어두운 도시임에도 있을 거 없을 거 다 있어서 신기했다.
가족들 모두 보고 나와 강한 여운이 남았던 곳
모두들 인생에서 필요한건 뭘까? 하며 질문을 던졌다.
지하도시에 있다가 나와서 빛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에게는 정말 당연했던 빛이 누군가에게는 한 평생 보지도 못했을수도 있는 존재였을지도.
그저 지하에서만 살다가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여기서 살바에야 차라리 만주 가서 자폭할거라 했고,
아부지도 전쟁에 뛰어 나갔으면 나갔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했다.
나도 여기서는 못 살겠다 싶었다.
근데 바깥 삶을 살아봤으니까 이게 어렵다는 걸 아는걸까?
나도 여기에서 그냥 처음에 태어났으면 이 도시에서 아무런 불평없이 그러려니 하고 살았을까?
이래서 사람을 여러 환경을 경험해보아야 하나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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