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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프로젝트/시청역의점심

10월 22일 얼음(10월 - 애착 / 2015 하루달력)

by 그네* 2015.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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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얼음




얼음은 공격 도구이자 장난감이었다. 맥도날드에 모여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서 입을 떼기 시작한다. 콜라가 나오면 슬슬 눈치를 본다. 한 명이 ‘아그작’ 소리를 내는 순간 서로의 얼굴에 얼음을 맞추며 하나씩 투투 뱉어댔다.
“하지마라캤다.”
경고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분명 사회 조별과제 모임이었지만 얼음을 뱉다가 갑자기 “금마 지금 뭐 하고 있겠노. 전화해볼까.”라는 생각도 투투 뱉어냈다. 생각이 정제 없이 입까지 그대로 달려오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발표용 전지에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을 낙서하고 끄적거렸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가 뭔가 막히면 다시 얼음을 서로에게 날렸다. 얼음 하나 튕기고 시계를 보면 한 시간씩 가 있을 만큼 웃기에 바빴다.
그 새 나이를 무럭무럭 먹은 우리는 부산, 서울로 뿔뿔이 흩어졌다. 얼음을 아그작 거리기는커녕 만나서 물 한 잔 마시기도 어려울 만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얼음을 볼 때면 그때가 생각나서 묘한 청량감이 생긴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오래된 친구가 좋다는 말의 의미도 알 것 같은 요즘이다.
늘 장난기 넘치는 말과 거친 애정표현 덕에 부드러운 말로 감싸는 것에는 젬병인 나지만 마음에 꼭 안고 있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는 항상 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응원할 거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변해가지만, 서로의 기억 속에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서로의 모습을 늘 꺼내주자. 더럽고 아니꼬운 세상에서 그래도 나는 니가 있어서 내 자신을 쓰담쓰담 보듬을 수 있다.“
오늘 입안에 얼음을 굴리며 아그작거리려다가 이내 녹이면서 싱긋 웃어보았다. 오랜만에 추석에 문지애, 문영혜, 정새하를 만나면 얼음을 우투투 날려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얼음은 내게 차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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