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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튀르키예 대가족 여행

(15) 카파도키아 눈물의 인생맛집 중국집 매화(feat. 싸움 폭발)

by 그네* 2024.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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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낮 카파도키아 = 타들어가서 못 돌아다님

아나톨리아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까지 오는 여정이 쉽지 않았기에 모두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정말 쨍한 카파도키아 날씨 때문에 낮에는 뭘할수가 없었다. 

 

1차 가족대전 폭발 = 그놈의 에어컨 18도

해가 좀 지기 시작하니 훨씬 햇빛이 너그러워졌다. 
하나둘씩 잠에서 깨서 야외 테라스 자리로 모이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돌려 추운 실내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오니
아버지부터 핑-핑 비염으로 정신없이 기침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해지는 카파도키아 한 쪽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리고 연서가 올라왔는데 덜덜 떨며 할미에게 안겼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18도로 해놓고 나중에 온도를 올리려 했는데 모두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벌벌 떨면서 잔 것이다. 
엄마는 언니와 형부를 나무라며 부모가 되어서 정신이 없는거냐며 역정을 냈다. 
차갑게 냉기를 머금은 연서의 팔다리를 엄마는 주무르며 연서에게 추우면 엄마에게 말하지 하며 연서를 달랬다.  언니에게 엄마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화를 쏟아냈다. 
엄마는 형부한테는 크게 뭐라할 수 없으니 언니에게 몰빵하여 화를 냈다.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K-장녀라 가족들을 등지고 카파도키아 풍경을 눈앞에 두고서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언니가 너무 불쌍했다. 부주의하긴 했지만 또 그럴수도 있는건데.
엄마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다. 언니와 형부가 너무 무심하여 연서가 자꾸 아프고 컨디션이 나빠지는 거라고 화나했다. 
다만 형부를 뭐라할 수 있으니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이 언니가 되는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조져지는 건 언제나 언니였다..☆

카파도키아 소울푸드 맛집 중국집 매화

 
이 때쯤 국물 들어가줘야 해요.
기린과 나는 이 쑥쑥한 분위기를 타개할 존맛집을 찾아 헤맸다.
도보 거리내에 한국인들이 극찬하는 중국집 매화를 가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장님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 중국집을 하는 한국인이라니...?
 

한국어 메뉴 완비

우리는 우육탕, 김계란국(대),  옥수수&치킨 계란국(소), 소고기 가지볶음밥, 탕수육, 마파두부, 쌀밥, 계란볶음밥, 물 을 주문했다. 
다 정말 너무 맛있게 먹었다. 

카파도키아 최고 위엄 소울푸드 지금도 생각나는 김계란국

마라 우육탕 겁내 맛있었음
콘&치킨 계란국 소자 for 연서

사장님의 추천픽인 김미역국으로 속을 풀었다.
여기는 그냥 한국에 있었어도 참 맛있다 느꼈을 중국집이었다.
심지어 중국집을 느끼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 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띵띵 부어있던 연서가 점차 붓기와 함께 추위도 달아나는듯했다. 
기분이 점점 나아지는 듯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연서가 잘 먹으면 가족들이 다같이 화기애애해지고 연서가 기분이 나쁘면 다같이 암울해졌다. 
 
이제 연서도 잘 먹고 다들 좀 괜찮게 먹으려하던 찰나만 되면 
맛있게 먹다가도 눙물이 멈추지 않는 자매님이었다.  
맛있다~만 어색하게 연호하면 먹었던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그래 이게 가족여행이지 ^_ㅠ
 

관광지 물가 제대로인 카파도키아 기념품 거리

배도 부르겠다 주변을 돌아보자며 식당 주변의 카파도키아 기념품을 구경하러 갔다.
역시 관광지라 그런지 제법 가격들이 다 나갔다.
이렇다할 깔끔하게 정돈된 기념품 가게나 소품샵은 없었다. 
우리네 불국사 인근에 있는 조잡한 기념품 파는 가게들의 터키 버전이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카파도키아 특산품인 열기구, 자석, 악마의눈 기념품 등이 다들 겹치게 있었다. 

 

 

 
이 와중에 연서는 굳이 '푸우' 인형에 꽂혀서 갖고싶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서 사주겠다고, 굳이 튀르키예까지 와서 짐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쑥 돌고 오는 길에 언니가 계속 눈물을 훔치다가 엄마와 화해를 위해 다가갔다.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서 뭐가 불이 튄건지 둘이 갑자기 카파도키아 길거리 한가운데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언니는 이제 제발 좀 그만 하라고 화를 내고, 
엄마는 부글부글하는데 그래도 참고 밥먹고 나온건데 내가 뭘 자극했다고 그만하라고 하는거냐며 화를 냈다. 
 
튀르키예에서도 막을 수 없는 모녀 간 퐈이어...엄마가 너무 화를 내고 기분이 태도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무안하게 하는게 난 화가 났다. 엄마에 대한 그간 쌓여온 인내심이 바닥이 나버렸다. 
 
엄마와 언니를 좀 분리하는게 필요하겠다 싶은 순간, 기린이 엄마를 모시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기린은 천사니? 보살님이세요?난 반대 상황이 된다면 이렇게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시가 식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기린에게 한 없이 고마워졌다.

엄마를 달래는 기린

 
그 사이 나는 언니와 루비 케이브 호텔 계단에 앉아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눈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엄마의 말이 진심이 아니고 형부를 치지 못하니 언니를 조진거라고 번역기를 돌려 전했다. 언니와 속내를 터놓고 그 계단에 앉아서 서로 눈물을 닦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인생 전체가 다 너무 버겁고 때려치고 싶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언니는 타격감 제대로 받은 상황이었고, 형부와도 사이가 안 좋았기에 언니의 외로움은 절정에 있었다. 엄마도 나무라고, 남편도 언니와 냉랭한 상황에서 온 이 가족여행 자체가 언니에게 버거운 듯 했다. 시부모님과는 가봤어도 정작 부모님과 와보지 못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첫 해외여행이 이렇게나 불편하다니. 언니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훗날 한국으로 돌아와 참 좋게 잘 지내는 상태에서 가족 여행을 갔다면 더없이 행복했을 여행일텐데, 언니와 형부가 싸워서 망친것 같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언니는 짐을 싸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 게임만 하고 있던 형부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떠나기 직전에 보란듯이 영상통화를 하고, 무표정하게 앉아서 폰만 잡고 있던 형부가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어떤 많은 감정선이 오갔겠지만 다 차치하고 우리 언니를 힘들게 하는 그 누구든 난 미웠다. 그게 형부일지라도. 
개쌍욕을 하면서 서로 화를 털어내고 개드립을 치며 웃기도 하면서
어느 여름밤 카파도키아 어두운 골목에서 우리 자매는 서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극적인 화해 타결

기린이 연락이 왔다. 어디에 있냐고 물었고 숙소 뒤 호텔 계단에 앉아서 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와 기린이 갑자기 우리 앞으로 나타났다. 
 
캬- 또 사위가 달래니까 엄마가 말이 들렸나보다.
엄마가 언니에게 사과하면서 형부에게 뭐라할 수 없어서 진심이 아닌 말을 했다고. 
이렇게 말하면 형부가 알아듣고 행동이 바뀔거라 생각했다고 엄마의 마음을 말했다.
기린은 엄마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형부가 절대 알수가 없고, 조져지는건 언니라고 했다.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거듭 설득했다. 
내가 말하면 안 듣던 엄마가 기린이 말하니 듣고 이성을 되찾았다.
 
기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아니다 싶은 말은 해주어 정말 고마웠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짜증이 탁 올라오는 나에 비해서 기린이 더 넓은 그릇을 가지고 우리 가족들을 품어주었다. 
 
이렇게 우리 다같이 싸우면서 가족이 되어가는건가? 
잊지 못할 카파도키아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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