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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

결혼식 준비 (3) 결혼의 시작 & 가치관 충돌(feat. 비혼, 딩크, 싸움...)

by 그네* 202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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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feat. 부모님 부스터)

 

천진무구한 표정으로 "우리는 결혼 언제해?" 라며 남친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덩치가 커졌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일정이 딱하고 잡히었다.

 

사실 그 전까지 결혼은 '사랑해의 최상급 표현' 같은 존재였다. '매 순간 같이 있고 싶고 평생 너와 함께 하고 싶을만큼 사랑해'를 간결하게 말해줄 수 있는 기똥찬 표현이었다. 그렇다고 입밖에 자주 내어보진 않았다. 단어의 무게감이 다른 것과 비교할때 꽤나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9년 12월쯤 카페에서 노닥노닥 이야기를 하다가 남친이 뜬금포로 '2021년에는 결혼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훅 밀고 들어오자 그제서야 '결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애하면서 막연하게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면 참 좋을 거 같다. '에서 '언제'라는 항목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것이다. 그치만 우리는 같은 2021년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 나는 '가을쯤?'이라고 생각했고, 남친은 '봄'을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나무보다는 뭉터기 숲을 보는 시각으로 결혼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친구의 베프가 내년 4월 예식을 위해 올해 6월에 웨딩홀을 계약하고 왔다는 말을 전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예식들이 많이 밀리면서 내년 봄까지 예식이 많이 차있어 그다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며 '응? 발등에 불이 떨어진게 아니라 발등이 이미 타들어가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는 내년 결혼을 위해서 이 맘때쯤이면 양가에 인사드리는 것이 시작되어야 한다라고 마음이 동동 뛰었다고 한다. 

 

그 길로 남자친구는 집으로 가 "내년에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셔서 마냥 환영하시지 않았다. 남자친구에게는 형이 있는데 형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형제들과 여행도 가고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으셨기 때문이었다. "형은 여자친구도 없는데 형 결혼 안하면 난 결혼도 못해??!?!?" 라며 남자친구가 자꾸 찡을 박자 부모님께서 '그래 어디 한 번 사람을 보자'라고 말씀하셨다. 

 

"엄마 나 이번 주 토요일에 남자친구 가족들 뵙기로했어!" 하자 우리집도 눈빛이 바뀌었다. "결혼할거야?" 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공수래~ 공수거'를 외치며 혼자 살다가 실버타운 갈거라고 말했던 비혼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버지가 '그래 큰 딸은 시집 보내서 애기도 낳고 사는 걸 봤으니 작은 딸은 저 하고 싶은거 다하고 살아라'고 마음을 먹고 계셨다.  그런데 이제 와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두 분 다 어안이 벙벙해하셨다. 

 

이 때부터 중요한게 정보 전달 이었다. 항상 생각했던게 '내가 받은 것이 1이더라도 10인거처럼 말하고 내가 해준게 10이더라도 1인거처럼 말해야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께 더 많은 점수를 땄으면 했다. 그런데 사실 이 시점에는 점수따기에 실패했다. 나도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모든 정보를 부모님께 다 오픈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안목에 기대어 뭔가 결정을 내리고 싶었던 거 같다. 

 


가치관 충돌
(feat. 딩크, 비혼, 싸움 등등)

 

결혼에 대한 확신을 내리기 어려웠던 굵직한 이유가 있었다. 비혼주의자에 딩크를 선호한 나와 대척점에 있는 남자친구 사이에는 가치관의 정면 충돌이 있었다. 신혼집 구하는 대목에서부터 창원-해운대 라는 장거리 커플의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남친은 강력하게 아이를 원했다. 아이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 없고 살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제일 가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오는 여자의 몸 변화(노화, 관절약화 등등), 직장에서 도태,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민폐되는 워킹맘, 모성애는 위대하다라는 거짓신화, 가부장적 사회 및 가정 구조 등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혔다. 그래서 사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왜냐면 아무리 남자와 이야기해보아도 남자들은 육아의 어려움을 디테일하게 알지 못한다. 남자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엄청난 정보격차와 극복할 수 없는 관점을 경험했다.

 

99도에서 100도가 되도록 싸움을 키운건 이 대목이었다. 우리는 여러 신혼집 후보군 중 최적을 찾기 위해 출근, 퇴근 시간대에 네비를 서로 찍어서 시간을 공유했다. 남친은 장거리 출퇴근을 '매일매일'해야 되는 것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ㅠㅠ 그러자 1시간 30분 걸리는 통근 거리에서는 남친이 아이를 키우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1시간 거리로 줄어드는 신혼집 후보지가 급부상하자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체 30분의 의미가 네게 뭐니? 나는 널 위해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한 내 가치관을 바꿔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시뮬레이션 돌리며 노력하는데 너는 고작 30분으로 아이 여부를 고민하는거야?"

장거리 커플 현실 ㅠ0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딩크 여부를 고민하는 내게 남친은 마치 '1년 전부터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느낌'이라고 너무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독박육아'라는 말에도 기분나빠했다. 자기는 주말부부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밤낮으로 편도로 53km 총 100km가 넘는 거리를 통근해야한다고 했다. 자기도 노력을 하고 있는데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육아에 대해서는 낳고 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육아'의 영역에서 내가 주양육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를 더 갑갑하게 했다.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다가 낳는것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도 힘든데 심지어 주양육자가 될 판이니 답답했다. 당장 내 일이라고 느껴져서 인터넷에도 '딩크 후회', '워킹맘' 등을 찾아보며 여러 관점에서 육아를 보려고 했다. 워킹맘인 언니네에게도 많이 물어보면서 고민을 계속해나갔다.  아버지께도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뼈를 때리셨다. 

 

"정말 결혼을 하고 싶다면 서로 위해주고 더 아껴주려고 자기를 희생하는것도 마다하지 않아야하는거 아니니? 그렇지만 너희의 대화를 보면 너는 아기를 키우겠다고 바꾼 것을 무기 삼아 장거리 출퇴근이라는 희생과 비교하며 계산하는것 같다. 남자친구의 세계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은 당연한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엄청난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서는 안될거야. 잘 생각해봐라."

 

맞다. 나는 남친의 장거리 출퇴근 보다 내가 딩크를 포기하고 아기를 키워나가는 것이 훠어어얼씬 큰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계산기처럼 탁탁 두드린것도 맞다. 반성했다. 그치만 이건 살아보면서 알겠지만 내가 훨씬 큰 희생이라는 생각에는 사실 변함이 없다. ㅂㄷㅂㄷ

 

육아라는 삶을 살아나갈지 결정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면서 고민했다. 남친에게도 너희 회사에서 육아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가져와보라고 했지만 열악했다. 시차출퇴근제, 가족돌봄휴가 등 비교적 제도가 나은 우리 회사에서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만약 등원시킨다면 아침 9시 30분 시차출퇴근제를 하고, 6시 30분 퇴근 후 7시 등원도우미로부터 픽업하여 밥하고 아기 재우면 8시 30분쯤 될텐데 내가 아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평일에 고작 1시간 30분 정도인데 이게 아기를 키운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말에 남자친구도 많이 답답해했다. 자기가 차라리 아기를 몸에 배고 낳을 수 있고 등하원시키고 키울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자기 곁에서 내가 불행할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이런 이슈에 부딪힐 때마다 '지금이라도 육아를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 여성에게 그를 보내줘야하나' 많이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설사 딩크가 된다 하더라도 또 그가 내 옆에서 가슴 한 쪽이 뻥 뚫린 채 살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처음 크게 싸우고 나서  우리는 솔직하게 이런 이야기를 다 했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우리 결혼의 목표는 아이가 아니라 함께 하고 싶은 것 으로 명확하게 정해졌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은 살아봐야 안다

근사한 우리 가족...?

남자친구와 울며 불며 피터지게 싸우면서 했던 말이 있다. "육아가 어떤건지 남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인터넷에 한 번 검색해봤어? 전에 내가 봐라고 했던 닥터베르의 육아일기 웹툰은 봤니? 너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한 번이라도 보고 검색해봤을거야. 그렇지만 안했다는건 너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남자친구는 다음 날 바로 웹툰을 읽고 감상문을 내게 보내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휴..... 그치만 그마저도 몹쓸 육아 로망만 더 키워줄뿐 진짜 힘든 영역은 보지를 못한다. (ㅂㄷㅂㄷ) 

 

육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산부인과 의사 아내를 둔 공대 박사가 휴직 내고 아이를 키운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렸다. 웹툰 출처가 논문이고 굉장히 쉽게 잘 설명해놔서 육아에 대하여 재밌게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보면서 남친이랑 같이 대화를 해보면 좋을 추천 웹툰!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732955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산부인과 의사 엄마의 임신과 출산, 공학박사 아빠의 논문 기반 육아.완벽할 것만 같은 이들의 앞길은 과연 순탄할까?탄탄대로를 달리던 두 사람의 좌충우돌, 우여곡절 중구난방 육아 이야기!웃

comic.naver.com

 

노력해주는 그가 고맙고 이해해줘서 참으로 고마웠다. 거의 처음으로 감정이 격하게 되어 싸워본 경험이었다. 대화로 우리는 서로 어떻게든 감정 상하지 말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좋게 생각하기로 서로 노력하자 라며 조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고 서로를 아꼈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살아보고 일단 결정하자이다. 신혼집에서 남친의 직장까지는 약 50km, 1시간에서 1시간 20분이, 금요일에는 거의 2시간이 소요된다. 매일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것이다. 살아보아야 가늠해볼 수 있다. 

 

남자들도 육아휴직이 정말 보편화되어야 한다. 이런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온전히 개인의 부담으로 오니 저출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회사는 육아휴직 인력에 대하여 대체인력을 뽑지 않고 그 육아휴직자의 연봉 지급되지 않는것은 회사의 당기 비용 절감으로 된다. 즉 5명이 하던 일을 4명이서 하고 그 4명만 죽어나가니 육아휴직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저출산 문제는 조금씩 개선될것이다. 기본적으로 결혼을 마음 먹은 사람은 같이 해나간다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서로 함께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한 쪽의 희생이나 독박이 될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균형이 맞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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