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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콘텐츠/오늘의 강연&성장

반병현 작가 챗GPT 강연 @해운대인문학도서관

by 그네*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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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와 기린과 챗GPT 강연을 들으러 갔다왔다. 해운대인문학도서관에서 진행되었는데 집에서 대중교통으로는 한시간이 넘지만 차로 가면 30분도 걸리지 않는 오묘한 오지산간 같은 곳에 있었다. 90여명의 사람들이 왔고 강의는 질의응답을 포함해서 2시간동안 진행되었다.


작가 이력을 보면 고2에 카이스트를 가는 등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뭔가 겸손과는 거리가 먼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가 거슬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강의력이 뛰어나 두시간동안 집중을 잃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는 명강의였다. 전에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한 카이스트 명예교수의 강의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챗GPT의 원리에 대해 알수 있어 좋았다.

챗GPT가 출시되는 데는 불과 13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부터 구글, 메타 등에서 다양한 인공지능 모델은 존재해왔다. 여기에서 이제 작문 능력과 채팅 UI가 접목된 것이 챗GPT다. 이미 인공지능은 자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구글의 천재 개발자가 인터뷰도 했다는데 섬뜩해졌다. 대부분의 사무직 노동이 챗GPT 로 대체되어 단순 노동만이 남는데 이마저도 드론, 로봇 등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해질 것으로 보였다.


챗GPT는 질문이 좋을수록 답변도 좋아 이용자의 지능을 반영한 거울과 같다는 논문 자료도 있었다. 실제로 작가가 법률 관련해서 단순한 질문을 했을 때와 우리나라의 법조항, 판례, 조례 등을 주입한 뒤 물어봤을 때의 답변은 차원이 달랐다. 그 이유는 챗GPT가 학습 이해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지식을 텍스트화하여 풀어내는 디코더 기능이 집중적으로 탑재되어있기 때문이었다. ATTENTION이라는 인공지능이 앞서 사용자가 주입한 내용에서 맥락을 예측하고 파악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때문에 인공지능이 직접 공부한 자료가 아니라 있는 자료들을 가공하여 맥락을 파악해 원하는 답변으로 문장을 구성할 뿐이다. 때문에 질문할 때 기본적인 기초자료를 인공지능이 파악할수 있도록 연혁, 사례 등을 풍부하게 준 뒤 조건을 제공하는 형태로 질문해야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워드, 엑셀도 다 인공지능이 알아서 써주고 분석하면서 20년 이상의 경력직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업무영역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고 한다. 그것도 올해 안에. 구글이 이해력까지 빠삭한 인공지능을 곧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할거라고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가장 먼저 사라지는 직업이 될것이라 한다. 챗GPT열풍도 곧 사그라들고 또다른 변화가 올것이라 한다. 챗GPT는 3000억 규모의 슈퍼컴퓨터로 돌아가는 세상 비효율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3천억을 투자해서 연구할만한 의지가 있는 소수의 기업가와 자본가만이 세상을 앞서나가게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



아버지와 기린과 집에 돌아오면서 변화하는 속도가 무섭다고 했다. 점점 더 자본가와 기득권 층에게 유리하게 되어가는 이 세상이 제대로 가고 있는건가 싶었다. 나중에 연서가 자라면 어떤 사회일지 한 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2045년까지 살아 있으면 이후에 인류가 영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아버지와 기린과 강연을 들으며 서로 이해했던 부분이나 무서웠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아직도 60%의 사람들은 챗 GPT를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도태되어가는 사람과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사람 사이에 간극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나중에 모든 노동이 대체되면 인간은 기본소득만 받으며 노동없는 삶을 살게될거라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회사가기 너무 싫지만 일이 없는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인간에게 ‘뿌듯함’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필요해보인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것인가에 대하여서도 감정 역시 ’학습되어진 반복된 패턴‘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인간이 언어나 감정을 반복하여 학습하듯, 인공지능도 그렇게 학습한다면 충분히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학습 받았듯 그들도 학습받는다면, 그들에게는 예측된 패턴 중 하나라고 하지만 인간이라고 크게 다를까. 장난스레 ’휴먼은 쓸모가 없다‘ 하며 인공지능이 언제든 인류에게 ’전기’와 같은 에너지원을 차단시킨다면 바로 세상은 종말할것 같다고 차안에서 떠들며 집에 왔다.

엄마가 고기 먹으러 오라고 해서 집에 갔더니 엄마가 소고기며 돼지고기며 바리바리 사들고 오셨다. 채소와 고기를 구워서 배터지게 먹고 느끼해서 청사포 카페로 갔다. 한옥 느낌 나는 카페를 가서 ’호롱불‘을 보며 엄마는 저런걸 쓰던 세상에서 지금 이 세상까지 온게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려 강연 영상도 찍었지만 보여준다한들 보겠냐며 했다. 아버지의 친구들 대부분은 컴맹이고 챗GPT 쓸일 없다며 관심없다하셨다. 아버지는 그런 삶의 태도가 몹시 답답하고 갑갑하다하셨다. 인간에게는 계속해서 배우려는 그 마음과 의지가 중요하다 하셨다. 70대가 되어서도 30대인 나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챗GPT를 써보고 익히시려고 하는게 대단하다 느껴졌다. 아버지는 카카오톡에 제공되는 GPT와 신은 존재하는지, 우크라이나 비극이 신의 뜻인지 신랄한 토론을 하셨던걸 보여주셨다. 아버지는 무엇을 배울 때 ’책’ 이 가장 편한 세대인데 책, 컴퓨터, 스마트폰을 거쳐 인공지능까지 열심히 배우려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한들 엄마가 고기를 바리바리 사들고 와서 구워주며 ‘참외 더줄까?’할때의 이 복잡 미묘한 감정도 학습할수 있을까. 배터지게 먹고 다 같이 카페로 내려가서 오손도손 이야기할 때 ‘행복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한정적인 이 복잡하고 따뜻하며 안온한 감정을 알 수 있을까? ‘우리’라는 말 한마디에 들어가는 다양한 감정을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인공지능을 나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도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 공존하는 삶을 생각해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호모 사피엔스 이후 새로운 인류처럼 말이다. 어쩌면 인간을 수단처럼 쓰고 있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보다 선한 의지의 인공지능이 더 인간에게는 유익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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