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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씨앗/매일을 기록

우편함에서 손편지를 받는 기쁨에 대하여

by 그네*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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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의 기쁨

 

분리수거를 하러 갈 때에나 집 앞 우편함을 지나친다. 보통 지하 주차장과 집만 오가기에 편지함이 있는 1층에 내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분리수거를 하는 길에 슬쩍 본 우리집 편지함에 편지가 꽂혀있는것이 아닌가...!

 

S로부터 온 편지였다. 반짝이는 금박으로 화려하게 한 해 마무리를 알리듯 HOLIDAY라고 적힌 카드였다. 카드 안에 따로 쓴 편지지가 담겨있었다. 한 장의 카드에 담기에는 할 말이 많았다는 듯이. 내게 편지함에서 손편지를 받아보는 기쁨을 주고싶어 보냈다는 예쁜 마음이 담겨있었다. 행운 같이 이어진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소란스러운 각자의 시절에 우리가 함께 있어 다행이었고, 그래서 넘길 수 있었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는 말이었다. 소란스러운 시절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훗날 우리가 이 시기를 되돌아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편지를 읽을 때보다 또 읽고 읽을수록 마음이 더 진해지고 울컥해져온다. 따뜻함에 감사해진다. 2024년에도 우리 손을 꼭 잡고 험난한 세상 잘 해쳐나가보세!

 

엄마의 수강신청

문화회관 수강신청이 11시가 아니라 10시 58분쯤에 열리는 바람에 엄마의 재즈댄스 수강신청을 광탈해버렸다. 11시에 땡하고 들어갔더니 이미 7명이 차있었다. 11:01에 모든 수강신청을 종료하였는데도 대기순번을 받았다. 다들 새치기 한 것이고 담당자가 실수한 것인데 피해는 모순되게도 11시에 질서를 지킨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총 정원의 10자리는 인터넷 접수로, 5명은 현장 접수로 진행되어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9시부터 공식 접수가 시작되지만 사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되는 살벌한 현장 접수다. 그런데 하필 현장접수일인 오늘은 부산에서 영하 7도라는 믿을 수 없는 날씨였다. 어제 엄마는 내일 오히려 추워서 좋다며 가짜들은 안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엄마에게서 재즈댄스에 대한 광기가 느껴졌다.

 

아침 5시에 눈이 딱 떠져 커피 한 잔까지 싸악 마셨는데 새벽 6시라고 했다. 지금 나가면 1등일까봐 너무 일찍와 머쓱할것 같았는데 6시 15분에 도착하니 엄마의 대기순번은 8번이었다고 한다. 대체 어떤 사람들인건가 몇시에 나온겐가! 

 

장구반, 수채화반 등 문화회관의 인기강좌를 놓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인터넷 접수는 손이 느린 어른들에게 어려우니 애시당초 포기하시고 현장접수를 노리신 분들이었다. 다들 가장 두꺼운 외투에 잠옷바지 같이 입고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현장접수를 갔는데 이분들의 뜨거운 열기에 놀랐다고 한다. 질서 정연하게 알아서 반 별로 접수 번호를 정리하는 분이 있어 선착순 5명이 끝나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 수채화 반을 들으시는 할아버지는 바쁜 자식들에게 부탁하기 뭣해 항상 현장접수를 하신다고 했단다. 엄마에게 수채화 작품을 보여주시는데 수준급 작품에 감탄을 연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인생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그걸 하는게 큰 행복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라 멋지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각자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끝없이 배울수 있는 요즘이라 좋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인터넷 접수가 어려워 추운 날에도 현장접수를 가셔야 하는게 불공평하다 느껴지고 마음이 불편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에 대한 열정도 너무 존경스러웠다. 엄마는 오늘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신기해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니 라며 좀 반하고 온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내일 동지를 앞두고 팥죽을 끓였고 오늘 나는 그 팥물과 팥죽을 받아왔다. 엄마가 오늘은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너무 뿌듯하다고 했다. 그 뿌듯함 한 스푼이 담긴 팥죽과 팥물은 내년에 내게 나태함의 신이 오지 못하게 추가로 막아줄것 같다. 엄마의 멋진 삶에 큰 감명을 받으며 오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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