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의씨앗/매일을 기록

23년의 마지막을 기록

by 그네* 2024. 1. 3.
반응형

엄마와의 데이뚜

마지막 영업일에는 보통 일찍 마치는데 일이 많아 4시 넘어서 퇴근했다. 분했다. 엄마와 피자집에 갔다. 맛있게 피자를 먹으며 엄마가 요새 빠진 드라마 '마에스트라' 이야기를 들었다. 이영애가 연기한 차세음이라는 지휘자를 찬양했다. 냉철하고 일에 열정적인 모습에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저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찌나 자기 중심이 명확하고 도도한지 전남친, 현남편이 그녀에게 절절 매는 모습이 매력 넘친다고 했다. 그러나 극 후반부를 향해 가면서 저 사람이 정말 행복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며 꼭 보라고 했다. 차세음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에게는 엄마가 멋지고 참 아깝기도 한 사람이다. 엄마가 전업주부의 삶이 아니라 전문직이 되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번씩 해본다. 무슨 일이든 똑부러지게 하면서 엄청난 매력의 리더쉽으로 회사를 잘 이끌었을것 같다. 여러가지 한계로 꺾여버린 엄마의 삶이 내가 다 아쉽다. 

하지만 엄마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요새 걱정이 없다고 한다. 언니와 나도 어느정도 키웠고, 엄마의 마지막 연골마저 갈아가며 키워야 했던 조카도 이제 초등학교를 가서 손이 덜 간다. 짜치게 저금할 필요도 없고, 엄마가 좋아하는 재즈댄스를 실컷 수강하며 행복하다고 한다. 엄마가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행복한지 늘 고민하는 모습이 멋지다. 

엄마가 처음 조카를 맡는다고 했을 때를 되돌아보면 엄마가 후회되는게 많다고 했다. 그 때는 잘 몰랐어서 언니와 엄마가 동동 걸음 치며 아이를 키웠다. 육휴를 할 수 있는 형부인데도 언니와 엄마의 의식 안에는 형부를 육휴를 쓰게 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엄마가 그 때 내가 단도리쳐서 각자 육휴 하라고 했어야 했는데 라고 아직도 후회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언니가 선택한 삶이고, 엄마가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엄마는 편해져도 딸이 힘든게 엄마도 힘든가보다. 어떻게 하면 내 딸이 덜 힘들었을까를 10년이 지나서도 고민하고 자책하고 후회한다.

 

 

12/31 이른 떡국 잔치

1/1에 모이기보다 12/31에 다 같이 모이는게 나아 12/31에 떡국을 다같이 먹었다. 보통 새해 첫 날에 떡국을 먹지만 그 마저도 '굳이'라 느끼고 그냥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먹는것에 의의를 두었다. 남편이 '역시 허례허식 따위구만!'라며 놀라는 눈치였다 껄껄. 엄마와 이틀 전에 데이뚜 후 헤어질 때 '우리 모여서 떡국 먹나?'라는 한 마디에 엄마는 사골 육수와 떡을 사서 정성스레 떡국을 해주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두 그릇을 먹었다. 심지어 언니는 계란 지단에 소고기 떡국장까지 만들어서 두었다. 다같이 모여 맛있게 먹고서 엄마가 사온 피자까지 후식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말차 케이크를 언니는 스타벅스에서 케익을 6조각이나 털어왔다. 푸짐하게 펼쳐놓고 언니가 형부 친구들 모임에서 배워온 연태고량주 토닉을 타주었다. 술을 쥐똥만큼 넣었다고 했지만 퍼지는 술향에 크햐크햐 거리며 마셨다. 

 

언니와 형부의 학예제 영상을 보았다. 애들이 풋풋하게 춤을 추는데 너무 예뻐보였다. 동시에 춤 연습을 해야하는 선생님들의 직업이 극한직업처럼 보였다. 형부가 시간표 다 바꿔서 빅뱅 춤 연습 시켰다고 하는게 너무 웃겼다. 언니의 학예제 영상까지 다 돌려보고, 엄마의 재즈댄스 연습 영상까지 돌려봤다. 

 

 

이어서 튀르키예 여행 영상 상영회가 열렸다. 기린이 열심히 편집하여 무려 5부작으로 구성되었다. 영상으로 남겨놓으니 그 때 그 하늘과 온도, 분위기, 기도소리까지 생생하게 담겨 다시 여행의 기억이 살아났다. 주무시러 갔던 아버지도 시부지기 다시 자리로 돌아와 같이 영상을 보셨다. 영상에서도 역시나 절정은 카파도키아 열기구였다. 잔나비 노래와 설렘이 퍼지는데 언니가 기린을 보며 흐뭇하게 엄지척하였다. 영상 편집이 보통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게 아닌데 열심히 편집하여 소중한 추억이 휘발되지 않게 해준 기린에게 몹시 고마워졌다. 기린도 가족들이 환호하자 뿌듯해하며 활짝 웃었다. 

 

서울의 봄 이야기가 나와서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형부는 전두환이 나쁜 놈이다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후에 본심을 말했지만 문장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군사반란, 쿠데타, 군사정변의 정의를 읊어가며 박정희의 쿠데타와 비교할 때, 전두환의 쿠데타는 군사 반란일 뿐 명분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 보기엔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데서 다를 바가 없는데 형부 생각은 달랐나보다. 형부는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잘했다 못했다 평가가 아니라 명분이 부족한 부분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평가가 다름을 인정해야한다고 했다. 나는 그 역사학자들이 이승만이 무능하여 박정희의 군사정권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 또한 포장이라 했다. 결국 박정희도 이 나라 권력의 꼭대기에 가기 위해 찾은 명분이 이승만이었을 뿐 역사학자들의 관점이 잘못됐다고 했다. 그러자 형부가 '그건 아니고'하며 역사학자들의 말이 맞다라는 대전제하에 이야기를 시작하려기에 나는 거기에 계속 반기를 들었다. 그러다 답답하셨는지 아버지도 등판하여 그 쿠데타든 군사반란이든 단어의 정의에 국한하지 말고 앞뒤 상황, 정세, 맥락을 보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어른은 다르군. 

 

여기서 이제 홍범도 장군이야기까지 나왔다. 형부는 국방부가 정한 뜻이라면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일 경우 육사에서 빼는게 맞다고 했다. 또 나의 분노버튼을 눌렀다. 나는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입당한건 독립운동을 위한거라고 입당원서에도 적혀있고 스탈린의 공산당과 레닌의 공산당은 완전히 다른건데 국방부가 이념 전쟁을 위해 홍범도를 빨갱이로 몰며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형부가 그렇게까지는 몰랐는데 그게 맞다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국방부가 그렇게 정했고 나라에서 합의를 했으면 지켜야한다고 했다. 날 또 빡치게 하여 국방부 기자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국방부 대변인의 이념전쟁 불지피기가 얼마나 무식한 행위인지,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러자 형부도 아 몰랐다며 진정하며 괜히 서울의 봄 이야기를 꺼내어 분란을 만든거 같다며 머쓱해하며 가족간의 피튀기는 대화가 끝났다. 

 

빨라지는 내 말투와 높아진 목소리에 기린이 동공지진이 되자 언니가 케익을 입에 넣어주며 '살벌하게 이야기해서 놀랬제 ~ 마음껏 무~. '하며 달랬다. 기린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거리냐고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토론 이야기가 재밌는걸 낄낄. 근데 헤어지고 오는길에 생각해보니 가족들이 모여서 진짜 별별 대화를 다 한다 싶었다. 

 

 

상대를 외롭게하는 배우자의 반성문

남편이 요새 외롭다고 했다. 인간관계를 돌아보며 의지할 곳이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나와는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싸울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내 입장과 함께 억울함을 전했다. 요새 마음이 어떻냐 물으면  '글쎄' '모르겠다' 이런식으로 답을 하니 대화를 원치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특히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는 것 만으로도 기빨려하는데 무슨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가 먼저 원할 때 대화를 해야겠다라고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답을 그렇게 하더라도 계속 물어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투로 말하는 사람에게 계쏙 질문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게 나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힘들면 알아봐주면 좋겠다고 너무 무심한 거 같다고 했다. 

대화를 하자고 했는데 기린이 자러 들어갔다. 너무 열받아서 그냥 혼자서 드라마를 봤다. 그가 다시 슬며시 나오자 다시 대화를 신청했다. 정말 개빡치고 억울했지만 23년의 마지막날을 이렇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밖으로 많이 싸돌아다녀서 그가 외로울만한 원인을 많이 제공했기에 정말 무엇 때문에 외로운지 잘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눈물의 반성을 했다. 그러자 남편도 안아주며 내가 잘못한 거 없다고 말해줘서 고맙다하며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다. 알고보니 들어가서 튀르키예 영상 편집을 했다고 한다. 빡쳐서 들어갔으면서 어떻게 또 우리가족과의 여행 영상을 편집하고 있을수 있지...? 사람 관계란 참 어렵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