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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튀르키예 대가족 여행

(3) 튀르키예 대가족 여행 - 이스탄불 도착

by 그네*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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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공항에 오후 7시 30분에 도착했다. 해가 져 어둑어둑할 줄 알았는데 대낮 같이 밝았다. 모두 너덜너덜해져서 한산해진 공항에서 내려 나왔다. 인천공항의 3배 규모라더니 짐을 찾으러 가는데도 한참 걸렸다. 엄마와 아버지는 1등석에서 아주 편하게 왔다고 싱글벙글하셨다. 엄마는 우리집 침대보다 낫더라면서 인체공학 디자인이 적용되어 너무 편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비행기에 탑승하고 승무원에게 "우리 자식들이 몰래 사서 한건데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승무원이 웃으며 "저희도 가격은 잘 모르지만 일반석의 3배정도 되는 걸로 알아요. 자식들을 참 잘 키우셨네요" 하면서 사진 찍어드리겠다며 사진을 찍어주셨다고 했다. 엄마는 얼마되지 않는 좌석수에 앉은 사람들이 젊어보였고 다들 일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그들 사이에서 엄마와 아버지는 와인과 맛난 음식을 드시고 수평으로 누워서 주무시다가 왔다고 했다. 다행이라며 모두들 마음이 뿌듯했다. 

 

연서가 장시간 비행을 잘 견뎠을지 모두가 걱정했다. 다행히 일등석 못지 않게 언니와 형부의 무릎을 침대 삼아 쭈욱 누워서 왔다. 연서도 많이 피곤했을텐데 별다른 내색 없이 손을 잡고 왔다. 

 

이스탄불 공항의 특이한 랜덤 뽑기식 짐검사

이스탄불 공항의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짐수하물을 찾고 나가는 길에 어떤 여자 경찰이 두 갈래의 길에 서있었고 내 앞에 있던 흑인 가족들을 다른 코너로 가라고 했다. 나는 그쪽으로 가야하는줄 알고 갔는데 나머지 무리의 사람들은 다른 길로 그냥 통과했다. 내가 간 길에는 검색대가 있어서 짐을 다시 올려야해서 나가려고 하니 터키 말로 여자 경찰이 뭐라고 했다. 언니와 아버지가 다시 나가자고 우리도 그냥 가자고 해서 나오려고 하니 경찰이 인상을 찌푸리며 마음대로 해라는 식이었다. 언니는 지나가는 무리를 가르키며 “와이? 데이 돈(They don’t)?” 하니 지나가던 다른 무리의 한국 관광가이드가 입국자 중 무작위로 골라서 짐검사를 하는 것이고 최대한 협조해야한다고 했다. 그냥 하라면 할법도 한데 참지않는 우리 집은 온 가족이 튀어나와 왜인지 이유를 듣고 나서야 다시 돌아와서 짐을 탐색대에 올렸다. 돌아가서 다시 짐을 검색대에 통과시키고 나오는데 기분이 나빴다. 다들 힘들텐데 내가 괜히 앞서 가던 다른 사람들 따라 들어갔다가 절차가 하나 더 생기도록 만든거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절차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코너로 들어가라고 하니 새삼 우리나라의 친절한 응대가 그리워졌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ATM으로 현금 인출하기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서 현금 인출기와 교통카드 구매처를 찾아 헤맸다. 가족들은 졸졸 따라오는데 기린과 함께 다급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나오는데 이미 시간이 지체되어서 예약해놓은 밴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도 연락이 와서 건물이 10시반에 문을 닫으니 언제 오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공항에서 교통카드와 현금인출기를 찾지 못하면 시내에 가서 일일이 찾아야 하니 공항에서 최대한 해결하고 싶었다. 현금 인출기마다 환율과 수수료도 달라서 추천받은 3개의 은행 중 한 곳을 드디어 발견했다. 아니 근데 현금인출기가 터키어만 지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에 옆에 있던 터키 사람에게 물어봤다. 혹시나 터키사람이 카드를 들고 튈까봐 순간에도 긴장했다. 현금 인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는데 현금 인출 버튼을 누르니 언어 선택 설정이 나왔다. 도와준 터키사람에게 고맙다고 하고 돈을 다행히 뽑았다. 친절하지 않은 기계에 비해 사람들은 친절했다. 교통카드도 사고 싶었지만 층이 달라 그럴만한 시간은 없어서 바로 밴기사가 있다는 게이트로 나갔다. 

 

 

게이트로 나가서 밴 회사 사람에게 다가가 예약 여부를 확인하려 하니 “김돈길?”이라고 말했다. 이국적인 외모의 낯선 젊은이가 쩌렁쩌렁하게 감히 아부지의 이름을 부르니 낯설고 신기해서 웃음이 나왔다. 게이트 앞에서 대기를 조금 하다 다른 여행 무리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지하주차장에서 각 그룹 별로 차량이 오면 탑승을 안내했다. 검은색 큰 밴차량이 오는데 담당자가 “김.돈.길”을 크게 외쳤다. 형부와 기린이 농담으로 ‘저런 싸가지 없는 놈들’하며 웃으면서 밴에 탑승했다. 7명 대가족의 캐리어를 뒤에 다 싣고서 이스탄불 시내로 이동했다. 공항을 나오자 해가 져 노을이 분홍색 하늘을 만들면서 아름다웠다. 이스탄불 공항이 서울로 따지자면 천안쯤에 위치해 있다고 하던데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국적인 도로를 기대했지만 동부산 외곽도로 아니냐며 웃었다. 멀리 이스탄불까지 왔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이 커 장소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점점 해가 스멀스멀 지면서 어느새 높은 고층 빌딩과 호텔들이 보이는 시내로 들어왔다. 도무지 뜻을 알 수없는 튀르키예 언어로 쓰여있는 건물과 드문드문 모스크 사원들이 보이면서 튀르키예에 왔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가족들 모두가 창밖을 바삐 보다가 ‘와-’ 탄성을 자아낸 것은 경치도 아니고 교통체증이었다. 아래는 넓고 위는 좁은 오르막길에 차들이 4차선인지 5차선인지 구분이 안될만큼 서로 머리 밀어넣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택시는 어느 차선을 타려는건지 알 수 없을만큼 가로로 서있었다. ‘나만 먼저 가면 돼’가 느껴지는 경적과 무질서 속에서 도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저기 봐라’하여 손끝으로 시선을 따라가니 왠 건물의 1층에 위치한 식당이자 바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중년의 남녀가 짝을 지어 탱고 같은 춤을 추기도 하고 젊은 이들이 각자 리듬을 타며 신나보였다. 차에서 지나가며 본 찰나의 순간이지만 토요일 밤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미소가 강렬하게 남았다. 엄마는 우리나라에서 춤을 추는 공간이 대부분 지하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했는데 이 곳에는 지상에 위치한것도 모자라 모두가 볼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는것을 신기해하셨다. 느슨하고 여유롭게 춤을 즐기는 삶이 일상 곳곳에 있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주말을 볼 수 있었다. 

 

좁디좁은 오르막길에 차를 구겨넣어 올라가는 곡예 운전이 계속 되었다. 가는 골목마다 중심가라 양쪽에 사람들은 넘쳐 흘렀다. ‘와- 여기에서 어떻게 운전하냐’며 놀라움의 연속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숙소 앞에 도착했다. 엄청난 내리막길이었는데 기사가 우리가 내리도록 자동문을 버튼으로 여는데 차 바로 옆으로 지나가려던 오토바이가 열리는 차문에 부딪혔다. 오토바이 기사가 자동문을 손바닥으로 탕탕 쳤다. 그러자 밴 기사는 다시 문을 닫으니 오토바이도 아무일 없던듯 지나갔다. 다시 문이 열리고 우리는 황급히 내려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를 다 꺼냈다. 기사도 ‘오케이?’하고 바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좁은 사이길을 비집고 아무렇지 않게 가던 오토바이 기사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오토바이 기사가 문에 맞았는데도 사과나 별 해결책없이 다시 문을 닫았다 여는 밴기사도 놀라웠다. 둘 다 이런 일은 흔하다듯이 그냥 쌩-하고 가버리는 마무리까지 튀르키예의 운전은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만에 열쇠문을 열고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로 올라와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 기진맥진하여 짐을 풀고 각자 방을 정했다. 비행기에서 내내 사육 당하며 배가 꺼지지 않아 쉬어야겠다 싶었다. 물이 없어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간단한 스낵과 물을 배달로 보내주겠다 하여 감동하였다. 옥상에 올라가서 야경도 즐기라고 하여 올라갔더니 탁트인 보스포러스 해협과 이스탄불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내일 저녁에 옥상 테라스에서 밥을 먹자고 이야기하고 다시 내려왔다. 물이 생수가 아니라 5리터 정도되는 작은 생수통 같은 물통이 왔다. 초콜렛 과자를 몇개 같이 보내주었는데 맛이 좋아서 야밤에도 꿀꺽 들어갔다. 무사히 숙소에 들어온 것에 안도하며 긴 하루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옥상에 고양이를 보고 아버지가 계속 고양이에게 장난을 치셨다. 고양이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벤치 위에서 귀찮다는듯이 대꾸했다. 

 

끼익끼익 탁탁 솨아아아아 탁탁

 

잠을 자고 있는데 방 바깥 복도 쪽 나무 바닥에 ’끼익끼익‘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누군가 일어나서 사부작 소리를 내며 문을 탁 닫고서는 수전 돌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물이 솨아아 쏟아졌다. 엄마는 시차적응에 실패한건지 새벽 세시부터 일어나 샤워를 하고 숙소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둘째날에는 화장실에서 문고리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나왔다. 언니랑 아버지가 모두 쫓아나와 화장실 문앞에 벙쪄서 서있었다. 열쇠로 돌리는 화장실 문이 잘 작동하지 않았던 탓에 엄마가 당황하여 이리저리 문고리를 돌렸던 것이었다. 엄마가 나오자 다시 순식간에 각자 방으로 돌아갔고 얼마 안 지나서 새벽에 다시 엄마는 둠칫둠칫 움직였다. 이번에는 설거지 했던 그릇을 정리하였다. 집에서도 잘 안 하는 찬장 정리라니요. 그렇게 여행내내 온 가족이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사부작거리는 엄마의 부산스러움에 5시면 일어나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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