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튀르키예 대가족 여행

(6) 튀르키예 대가족 자유 여행 - 아야소피아, 니콘 수리센터

by 그네* 2024. 1. 21.
반응형

가족들은 아야소피아로 아버지와 나는 니콘 서비스 센터로.

어제의 카메라 박살로 의기소침했지만 아버지가 사진을 찍어보시더니 필터만 깨진거 같다고 하셔서 아침에 니콘 서비스 센터로 가보기로 했다. 튀르키예는 이스탄불의 수도니까 니콘 서비스 센터가 없을리 없었고 역시나 구글 맵에서 검색하니 바로 나왔다. 가족들은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아버지와 나는 니콘 서비스 센터를 갔다. 

구글 맵을 믿지마세요. 공식 홈페이지 최고!

니콘 서비스 센터 3개가 나왔지만 모두 헛걸음이었다. A/S 센터라고 정확하게 표기되었던 곳은 건물에 진입하자마자 튀르키예 아저씨가 어디 가냐면서 불러 세우더니 지도를 말해주자 이사갔다고 했다. 마치 국제시장 카메라 매장들처럼 니콘이나 카메라 매장들이 즐비한 거리였다. 니콘 로고가 크게 있는 매장에 가서 카메라 상태를 보여주자 바로 고개를 저었다. 길가에 있는 더 큰 니콘 공식 센터 같은 곳으로 갔는데 건물 표지판에 니콘이 없었다. 때마침 건물에 물건을 나르던 인부에게 번역기를 동원하여 니콘 매장을 물어보자 이사갔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냐고 하자 그들은 튀르키예말로 뭐라했지만 모르겠다는 말로 충분히 이해했다.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여행을 이제 시작했는데 이 벽돌같은 DSLR을 고이 모시다가 갈 것인가! 그러다가 아버지가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지 않겠냐고 말씀해주셨다. 공식 홈페이지로 바로 접속하여 봤더니 니콘 서비스 센터가 나왔다. 공식 홈페이지 수리센터 주소를 구글 맵에 검색하자 좌표만 찍히고 상호명은 안 나왔지만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가보았다. 

 

샛노란 니콘 로고가 그리 반가울수가 없었다. 매장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카메라를 보여주며 구글 번역기로 "깨진 필터를 빼낼 수 있습니까?"라고 문장을 써 보여줬다. 사진기 고수 같은 남자가 나서서 우리를 따라오라고 했다. 지하에 있는 수리 센터로 따라 내려갔다. 안에 기술자들이 몇명에게 카메라를 보여주자 손 악력으로 필터를 강제로 빼내려고 했다. 아버지가 렌즈가 상할까봐 "노노"하며 카메라를 다시 잡고서 바디를 잡고서 돌리도록 보여주셨다. 그들도 답답했는지 다시 수리 센터로 들어가서 장비를 썼더니 깔끔하게 필터와 분리된 2470렌즈의 카메라를 내게 안겨주었다. '땡큐땡큐'를 연방 외치며 "하우 머치?" 라고 하자 그들은 웃으며 그냥 가라고 했다. 나는 다시 땡큐를 연호하며 아버지와 니콘 매장을 나왔다. 

 

이스탄불까지 와서 카메라 수리점을 가리라고 생각도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에 카메라를 되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은 여행 기간동안 마음껏 카메라를 찍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역시 사람은 해보는데까지 해보아야 한다. 만약에 포기하고 깨진 카메라를 숙소에 두고서 여행을 다녔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야 소피아를 향해 걸어갔다.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 골목이라 그런지 미용실로 보이는 가게에는 우리나라 옛날 포스터 같은 벽보들이 가게 밖에 붙어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이 쪽으로 가면 돼요 라고 외치면 아버지는 엄청난 속도로 걸어가셨다. 

 

이스탄불에서 도보 시간 = 대중교통 이용 시간

아야 소피아로 빠르게 걸어갔다. 햇빛에 부서지는 나무도 너무 아름답고 날이 정말 좋았다. 빠르게 걸어가는 아버지와 함께 카메라가 잘 고쳐져서 안도하며 아침에 가길 참 잘했다고 하였따. 거리 옆으로 관광지 답게 전통 카페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들이 나와있고 활력이 넘쳤다. 아야소피아로 걸어가니 사람들이 줄을 쭉 서 있었고 바쁜 마음에 어서 기린에게 연락하였다. 기린은 "카메라 고쳤어?!"라고 물었고 멀쩡해진 카메라를 보여주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아야 소피아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려고 하니 입장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대인원이 들어가더니 다시 줄이 확 생겼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정해진 시간에 한정된 인원만 입장시켰다. 날이 무척더워 땡볕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히잡을 쓴 여성들도 많았다.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성지이겠거니 싶었다. 

 

아야 소피아에 대한 형부의 막간 강의

아야 소피아는 원래 카톨릭 교회였다. 콘스탄티노플 시대에 수도이자 성지로서 중심 교회였다. 그런데 술탄이 이스탄불을 점령하면서 아야 소피아라는 이름의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원래는 부수려고 했는데 너무 아름다워 이슬람 형태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상 숭배가 되지 않아서 카톨릭 성화는 모두 없애고 코란의 문구를 따와서 그린 그림들로 가득찼다. 외관은 오랜 세월이 느껴질만큼 허름하고 부서져가는 느낌이라 별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입장 시간이 되어 온 가족이 들어가는데 반골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설마 히잡 써야겠냐며 개기려고 하는데 히잡을 쓴 엄격한 관리인이 호루라기 같은걸 불면서 우리를 지목했다. 경고를 먹자 엄마가 가져온 머플러를 뒤집어 쓰고 들어갔다. 우리는 참 희한한 나라라면서 투덜투덜거리며 머플러로 얼굴만 빼꼼 내놓고 들어갔다. 히잡을 할만한 천이 없으면 심지어 사원 입구에서 돈을 주고 사야했다. 사원이라 입장료가 없는 대신 이런 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겐가.

 

카톨릭 + 무슬림 생경한 아름다움, 아야 소피아 

 

사원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야했다. 엄청난 규모의 신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기 전부터 후기의 악명 답게 전 세계에서 쏟아진 사람들의 쿰쿰한 맨발 냄새와 축축할 것 같은 초록색 카펫 바닥이 입장을 주저하게 했다. 그러나 히잡을 쓴 연서는 너무 신나서 기운이 솟아났다. 휘리릭 돌면 연서를 감싸는 머플러가 느리게 내려오자 신나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우와! 하며 탄성이 터져나왔다. 높은 천고에 처음보는 형태의 거대한 이슬람 코란 문구 그림이 신기했다. 이곳이 성당이었다가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는게 실감이 났다. 동그란 큰 모양에는 원래 성화가 있었다는데 무슬림은 우상숭배가 금지라 검은색을 가득 칠해놓고 코란의 문구가 잘 보이도록 강조해두었다. 여태 본 카톨릭 교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차마 아름다워서 부수지는 못하겠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원화 시켜놓으며 코란의 경구로 황칠하는 이 방식이 신기했다. 아야 소피아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 사진을 열심히 찍다보니 언니가 너무나 현지인 같았다. 언니도 히잡을 둘러 쓰고 천연덕스럽게 포즈를 취하는데 아버지가 '이쪽 피가 섞인게 틀림없다'며 웃으셨다. 

 

 

아버지가 열정 넘치게 사진을 찍으시자 외국인들이 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무심한듯 카메라를 받아들고서는 세로 가로 사진을 찍어주고 카메라를 넘겨주자 외국인들이 '오 ~ 굿!'하는 소리를 듣고 언니가 웃었다. 난생 처음 히잡을 쓰니 생각한 것보다 몹시 더웠다. 잠시 이렇게 쓰는 것도 더운데 평생 이렇게 천 안에 자신을 두면 얼마나 갑갑할까 싶었다. 지나가는 무슬림 여성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참 정감 가지 않는 문화지만 연서가 너무 행복해해서 같이 좋았다. 가족들이 모두 난생 처음 접한 이슬람 문화에 놀라며 이곳 저곳 바삐 눈을 옮기며 둘러보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