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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프로젝트/대학내일in독일

[insight]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내 안에 있다

by 그네* 201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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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포그래피는 나치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부터 교수형 등 여과 없이 보여준다. 최후의 재판 사진까지 명확한 역사의식을 더욱 분명히 잘 드러낸다.


2. 폴란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형 캠페인 홍보물


 


독일의 위기 극복 스토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내 안에 있다


 


독일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범국이 됐다. 강대국들의 아귀다툼에 이리저리 뜯기고 나서도 숨 돌릴 틈 없었다. 인류사에 다시없을 나치 군사독재 정권의 등장과 엄청난 유대인 학살로 악몽 같은 역사는 계속됐다. 심지어 그나마 남아 있던 잿더미 속의 국토마저 분단되어버렸다. 그 누가 독일에서 희망을 찾겠냐고 했지만 ‘기적’이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과거의 ‘고통’을 타산지석 삼아 미래를 위한 ‘근성’과 ‘기회’로 삼은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김근혜 학생리포터 fromswing@naver.com



나라 곳곳에서 스스로의 치부를 여과 없이 드러내다


독일의 철저한 역사의식과 과거 청산 의지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이웃 섬나라와 비교되며 항상 모범으로 손꼽혔다. 실제로 베를린에 와보니 이 정도일 줄이야! 첫 방문지였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y of Terror)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치스의 비밀경찰 게슈타포(Gestapo)와 히틀러 친위대였던 SS(Schutzstaffel)의 본부였던 곳을 활용한 박물관인 이곳은 인간의 자존감을 모멸감으로 떨어뜨리는 악랄한 탄압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나치 정권과 최후의 과거 청산까지,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리라는 의지였다. 베를린 중심에는 유대인 박물관도 있다. 이는 미국 워싱턴에 이라크 박물관이, 일본 도쿄에 한국인을 위로하는 박물관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건물 자체가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았을 정도로 진심을 다한 위로의 상징물이다. 전국 곳곳에 세워졌던 강제 노동수용소 역시 계속해서 보존되어 있다. 독일 역사를 보고 느끼며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당시 나치스의 활동을 주도한 것이 우리 나이 또래인 대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나치 정권은 각 연령대별로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모든 청소년들은 당시 최고 엘리트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SS에 소속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SS 속에서 사람들은 권력과 집단이라는 명분 속에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과연 우리가 그 시대의 독일에 있었다면, 혹은 그 이후의 독일에서 태어났더라도. 지금 이들처럼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를 드러낼 용기가 있었을까.


 


분단의 과거와 통일된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도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의 상징이다. 분단 시절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 장벽에 휩싸여 동서로 갈린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옛 분단 현실을 추억하는 여유가 생겨났다. 곳곳에서 동독과 서독 군인들로 분장한 사람들과 이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새 분단의 상처는 일상 속에서 무뎌져 가고 있었다. 40여 킬로미터에 달했던 베를린 장벽은 도시 곳곳에 남아 그 역사와 아픔을 어디서든 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동서독의 국경 지대였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독일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넘어가야 했던 비극이 있던 곳에는 이제 갈렸던 조국은 흔적만이 남았다. 다시는 그 고통 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일상 속에서 절로 다짐하게 만드는 귀중한 한순간을 담고 있었다.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언젠가 웃으면서 분단을 되새길 수 있다면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한 민족이 되어 극복한 ‘과거’의 순간으로.


 


‘라인 강의 기적’이 낳은 고통을


미래의 ‘기회’로,  에센 졸버라인 탄광


패전국에 대한 무지막지한 보상금과 망가져버린 자국 영토. 이들에게 탄광은 단순한 산업지대가 아니라 그야말로 ‘목숨 줄’이었다. 에센의 졸버라인 탄광은 하루 평균 2만톤의 석탄을 생산한 세계 최대의 산지였다. 동시에 이 지역은 루르 공업 지대로 ‘라인 강의 기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폐광된 뒤 에센에 남은 것은 오염된 도시와 떠나가는 사람들뿐이었다.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탄광은 그야말로 골칫덩어리였다.


그러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모여 폐광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당시 최첨단 광산 시설을 그대로 보존하여 디자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졸버라인 탄광 디자인 단지는 지난 2002년 8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럽 산업화 시기를 거친 역사적 증거물이자 현재 디자인의 중심지로 인정받은 것이다. 역사는 늘 그렇듯 유명인과 강자 위주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졸버라인 박물관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박물관에는 어린이부터 터키 이민자들까지 어떻게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살아왔는지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그중 가장 반갑기도 하면서 가슴 아팠던 것은 한국인 광부의 흔적이었다. 광산의 안전 수칙에 대한 질문에 삐뚤빼뚤한 한글로 답한 이분은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1972년 차관협정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1977년까지 약 8000여 명의 사람들이 광부로 이 지역에 왔다. 두 다리를 쭉 뻗기에도 갑갑한 크기의 침대와 언어 장벽 속에서 얼마나 한국이 그리웠을까. 그리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이는 지금 우리나라에 와있는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반복되고 있지 않을까. 인간의 망각은 나쁜 기억에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일은 모든 순간순간을 잡아두었다. 분단과 전쟁의 고통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세우는 데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온 사회의 골칫덩어리였던 사양산업 지대를 다시 미래의 힘 ‘디자인’이라는 기회로 변화시켰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독일이 돋보이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온 국민이 ‘함께’하는 태도이다. 어깨에 힘을 주고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세계인들은 이들의 변화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획일적 기준으로 재난을 불렀던 관점이 다문화를 포용하는 여유로 변화시킨 이 민족. 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Tip


1.  독일의 전시관은 주로 체험형이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거나 보고 만지는 형식이라 재미있다. 독일의 새로운 국가 브랜드 주력이 디자인 독일이라 그런지 매우 세련되었다. 독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한번쯤 가는 것을 추천한다.  


 


2. 독일 사람들에게 나치나 통일은 금기어가 않을까 걱정한다면 괜한 일이다. 독일 친구들이 자연스레 대화와 웃음의 소재로 삼을 정도로 크게 개의치 않는다. 특히 ‘통일’에 대해서는 대화해보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3. 동독의 흔적을 보고 싶다면 베를린과 드레스덴. 서독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뮌헨이나 쾰른 같은 대도시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동독 지역은 저렴한 물가와 소박하고 특색 있는 독일식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서독에서는 도시 특유의 활기와  현대적인 독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3. 체크포인트 4. 에센 졸버라인 디자인 센터의 전경. 탄광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간을 재활용하고 있다. 5,6.졸버라인 박물관은 독일인들이 일상부터 모든 면을 솔직 담백하게 감각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7. 포츠담 광장에 있는 베를린 장벽 8. 메나쉐 카디쉬만의 ‘떨어진 나뭇잎들’은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작품. 걸을 때마다 쇳소리가 마치 유대인들의 울음과 비명 소리처럼 들린다.  9. 전시관에서 만난 한국인 광부의 흔적. 이주 노동자들의 삶도 사진과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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